Q. 본인에 대한 짧은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지 님 :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유니버설 스튜디오 헐리우드에서 컨셉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류현지라고 합니다. 작년에 UCLA에서 영화미술 석사를 마친 후 연말까지 디즈니랜드의 디자인 및 설계를 맡고 있는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에서 일했습니다.
Q. 현재 본인의 직업인 ‘컨셉 아티스트’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현지 님 : 컨셉 아티스트라는 직종이 생소하실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게임 업계에서는 원화가라고 불리기도 해요. 주로 엔터테인먼트 혹은 제품 디자인 산업에서 프로젝트가 제작 단계에 진입하기 전에 컨셉을 시각화하는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직종입니다.
특정 디자인 프로젝트가 있을 때 참여하여 이를 시각화하는 일, 또는 요청자가 의뢰한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풀어나가는 일을 하는 일 등을 주로 진행하곤 해요.
Q. 멋진 도전을 계속 하고 계신데, 어쩌다 그 직업을 택하게 되었고 꿈을 이루셨나요?
현지 님 : 사실 저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던 아이였어요. 근데 글을 쓰면서 가장 매력 있게 느껴졌던 건 인물이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라는 스토리보다는 그 인물이 살고 있는 배경의 디테일이었고, 책을 읽을 때도 그 디테일이 더 궁금했어요.
그 디테일이 가장 살아있는 매개체가 영화라고 생각이 들어서 일 년 넘게 영화를 몇백 번 보고 공부를 한끝에 영화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가보니까 그 디테일을 시각화하고 있는 일은 다 그림 그리는 분들이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대학원을 다니는 3년 동안 노력해서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어요.
디베 : 대학원을 다니는 3년 동안 그림 그리셨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 텐데 그림은 어떻게 공부하면서 취업을 어떤식으로 준비하셨나요?
현지 님 : 대학원 수업 중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영화 미술 수업이 있었는데 프로젝트마다 세트를 담아낸 이미지들도 같이 과제로 제출해야 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다 3D 모델링을 했는데 저는 그냥 그 과제들을 기회 삼아 그림을 그렸어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조교도 하고 단편도 찍느라 남는 시간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수업 과제를 활용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공부를 어떻게 했냐에 대해 딱히 답이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림은 진짜 무식하게 많이 그리는 게 답이더라고요. 그래도 교수님들이 그림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들이라 그분들 피드백을 수용하면서 최대한 노력을 했어요. 엄마가 미대를 나오셔서 엄마한테 피드백을 많이 구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대학원 과정 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과제물들이 제 포트폴리오로 썼어요.
Q. 아티스트 혹은 디자이너로서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현지 님 : 꽤나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든 걸 관통하는 관찰력, 그리고 무엇이든 그걸 또 보고 재해석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 작업을 할 때 모든 영감은 주변에서 본 것에서 나오더라고요. 그걸 제 관점에서 어떻게 표현을 하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한 후 그것을 표현해낼 수 있을 때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베 : 그렇죠. 혹시 평상시에 영감을 수집?할 때 현지님은 주로 어떤식으로 하시나요? 저같은 경우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를 해두고, 이미지 같은 경우는 저장을 해두는 편인데.. 그리고 컨셉 아티스트에게 주는 영감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현지 님 : 저도 이미지 같은 걸 저장을 하는 편이에요! 모든 디자이너분들이 그렇겠지만 한 그림에 맞추어진 핀터레스트 보드를 만들거나, 기분에 따라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보드를 만들어서 영감과 글귀를 모아놓기도 해요. 사실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지 않고, 글을 보고 영감을 가장 많이 얻어요.
정해진 테마에 따라 글귀를 찾아서 그걸 보고 시각화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일상이에요. 모아둔 사진들이나 그림은 레퍼런스로 사용하는 편이에요. 제가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그림을 보고 새로운 게 떠오르진 않더라고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혹은 경험은 무엇인가요?
현지 님 : 제가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에 재직하면서 처음 맡게 된 Haunted Mansion이라는 놀이기구의 대기 줄 확장 프로젝트가 지금도 그렇지만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Haunted Mansion은 캘리포니아에 처음 와서 지금까지 디즈니랜드에 가면서 늘 봐왔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이며, 월트 디즈니가 살아생전 제작에 관여했던 몇 되지 않는 놀이기구이기도 합니다.
이런 놀이기구에 관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두근거렸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 색감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주신 컨셉 디자인 디렉터 밑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값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늘 제가 구현한 그림을 검토 받을 때마다 진심으로 즐거웠습니다.
Q. 컨셉 아티스트로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고 그 힘든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현지 님 : 그림은 혼자 그리는 과정이기에 매번 컨셉 아트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에 대해 생기는 의문, 그리고 그 의문과 동반하는 두려움이 가장 부담스러워요.
하지만 다행히도 컨셉 아티스트는 혼자 일하는 직업이 아니고, 다른 디자이너분들과 대표님들의 피드백을 받고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협업의 과정이 있어서 매번 극복을 해나간다고 생각해요.
디베 : 컨셉 아티스트도 혼자보다는 협업을 하는군요. 혹시 작업하면서 본인이 갖고 있는 생각과 주변의 피드백이 다를 때는 어떤 식으로 해결하시나요?
현지 님 : 컨셉 아티스트가 그리는 그림은 온전히 컨셉 아티스트의 것이 아니에요. 말인 즉슨, 아이디어를 제공한 디자이너분이나 디자인 팀 모두의 작품이지, 제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피드백이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날아와도 그렇게 크게 상처받지는 않아요.
새로 제안한 피드백에 맞추어 최대한 고쳐보고, 그러는 과정에서 구도와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그림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게끔 제가 어떻게 제 취향 혹은 생각을 반영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간혹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피드백을 받을 때 자존심 상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는데, 그럴 때는 ‘나는 그저 다른 이의 손이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되는 것 같아요. 본인이 만드는 작품에 대한 애착심을 완전히 지워버리긴 힘들겠지만 그걸 최대한 놓아버리는 방안으로 작업하곤 해요.
Q.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현지 님 : 저는 테마파크와 영화를 계속 오가면서 컨셉 아티스트 작업을 계속하고 싶어요. 아직 영화 업계 쪽은 뚫지 않았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길러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제 계획이에요.
Q. 컨셉 아티스트가 되고싶은 분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
현지 님 : 아직 조언할 단계는 아니지만 그림을 정말 좋아하신다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려고 노력하다 보면 AI가 팽배한 지금 세상에서도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디베 : 저도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전반적인 디자인 산업에 스며드는 걸 보면서 막연한 두려움에서 현실적인 무서움으로 바뀌고 있는데.. 혹시 생성형 인공지능과 컨셉 아티스트만의 극명한 차별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AI를 배척하기 보다 도구로 활용하면 더 시너기자 날 것 같기도 한데 현지님이나 해당 업계 분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현지 님 : 사실 저희도 AI에 대해 토론을 꽤나 하는 편이고, 반응도 반반이에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게임 업체에서도 서서히 AI로 컨셉 아트를 대신 생성하는 회사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들었고, 제가 최근에 대화한 영화 미술감독분도 같이 일한 감독이 AI로 만들어진 레퍼런스 프레젠테이션을 가져와서 당황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AI가 우리를 대체하겠구나 하는 절망감을 가지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전 생각보다 그 날이 그렇게 빠르게 찾아올 것 같진 않아요. 디자인이 물론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워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가질 수 있는 일관성을 AI로 만들어내기 쉽지 않아요.
저는 사실 그 일관성이 디자이너분들의 무기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분들이 AI를 일차적인 아이디어 구현이나 조금 더 자세한 레퍼런스 및 영감을 얻기 위해 사용한다면 오히려 시너지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Q. 개인적으로 현재 가장 관심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현지 님 : 빛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최근 관심거리에요. 에드워드 호퍼처럼 대비를 통해 감정을 끌어내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그걸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그래서 영화도 전처럼 디테일이나 스토리를 보다기보단 구도와 대비를 관찰하는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중이에요.
Q. 마지막으로 본인만의 공부법(노하우)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릴게요.
현지 님 : 저는 어릴 때부터 벼락치기가 안됐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쫓기면서 하다 보면 그림을 꼭 망치더라고요. 저만의 공부법이라 하긴 뭐 하지만 저는 조금씩 꾸준히 해놓는 편이에요. 미루지 않고 제때 하는 게 제 공부법이라 생각해요.
인터뷰이 연락처
류현지 님 웹사이트 : https://www.clararyu.com/ 이메일 : r.hjee.cryu@gmail.com